[Celtic Christianity] Celtic Mission의 요람을 찾아서

켈트 기독교의 상징인 Celtic Cross

켈트 기독교(Celtic Christianity)란 주후 5세기에서 7세기동안 주로 켈트족(아일랜드, 웨일즈, 스콧틀랜드지역에 켈트어를 썼던 족속) 및 브리톤족(앵글로-색슨족 침입이전 브리튼제도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중심으로 발달한 기독교를 일컸는다. 역사적으로 이지역은 로마제국권 밖에 있었던 지역으로 이 지역의 기독교전통은 로마를 중심으로 확장된 기독교(Roman Christianity)와 흔히 대별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켈트 기독교는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발달한 로마 기독교의 교구 중심적 제도(Diocesan system)와 달리 수도원 중심적 형태(Monastic system)로 발달하였다. 교구는 로마제국의 행정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효과적 치리를 위해 지역을 분할 한 것을  말한다. 교구에는 이를 치리하는 한 감독(bishop)이 있다. 반면에 수도원은 수도원장(abbot)을 중심으로 한다. 아일랜드의 경우 수도원장은 주로 그 지방을 다스리던 귀족이나 지도층인사로 반드시 안수를 받은 사제는 아니었다. 교구중심적 제도가 교황과 같은 위로 부터의 권위로 부터 성직을 안수 받아 실행하던 중앙집권적 제도형태라면 수도원 중심의 신앙은 각 지역별로 수도원장을 중심으로 자치적인 권한으로 신앙공동체 생활을 유지한 지방분권적 제도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켈트 기독교와 로마 기독교 전통사이의 차이점들은 점차 두 전통사이에 갈등을 불러오게 되었다. 근본적인 차이점의 한 예로 부활절 준수 일자를 들 수 있겠다. 부활절은 범교회적으로 중요한 절기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으나, 이를 준수하던 일자는 지역에 따라 달랐던 것으로 통일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AD 325년에 있던 니케아 공회의(Council of Nicaea)에서는 이를 춘분을 지나 찾아 오는 첫 만월(full moon) 이후 첫 주일(sunday)로 규정지었다. 부활절 요일을 주일로 확정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일요일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켈트전통은 구약의 히브리 월력을 따라 니산월 14일, 즉, 유대인의 유월절날(passover)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 것이다. 따라서 음력 월력의 일자를 따른 켈트 전통에 의하면 부활절준수는 꼭 주일이 아닌 다른 요일에도 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차이점은 단순히 켈트식과 로마식의 칼렌다 산출 방법이 틀린데서 기인한 것 뿐 아니라, 구약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강조하고 기록된 날짜(니산월 14일)를 따르려 했던 켈트전통과, 신약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난 주일(일요일)을 강조하려 했던 로마전통의 두 강조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일자 논쟁은 AD 664년 영국의 휫트비 회의(Synod of Whitby)를 통해, 로마전통을 택하는 것으로 일단 종료되었다.

교회사 및 선교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통과 예전의 차이점에 있기 보단, 켈트 기독교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일어난 선교운동에 촛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예수님의 삶(lifestyle)과 성경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좇고자 했던 그 중심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수도원을 개척하여 영성을 수련하고, 이상적인 삶과 선교적 열정을 실현한 것이다. 켈트 수도원 공동체와 수도사들은 중세 초기 어두웠던 유럽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공헌한 선교운동의 모체요 '복음의 에이전트'(Gospel Agent)들이었다. 이제 그 현장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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