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otion] Passion Week, Day 3. 신과 인간의 에로스

하나님을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욥은 고난의 문제, 특히 의인의 고난을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욥기는 단순히 고난보다 더 깊고 난해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욥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신과 인간의 사랑의 관계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욥기의 서두는 정황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여호와 하나님, 세상을 두루 순찰하고 온 사단, 그리고 우스 땅 동방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의롭고 재물로도 가장 부자인 욥이 등장한다. 얼핏 사단이 시비를 거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하나님이 먼저 발단을 만든다. 사단의 시비는 이에 대해 찾아온 것이다: “그의 소유를 치소서, 과연 욥이 어떻게 하나 봅시다…” 사단의 시비는 이런 것이었다. 사단의 주장에 의하면 욥의 하나님 경외는 ‘조건적’일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시비는 단순한 시비가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과연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그 수준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가려보자는 시비이다. 이러한 욥을 맞대고 사단은 사실 하나님의 자부심을 건드린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욥은 단순한 한 개인으로 시험을 받는다기 보다 인간을 대표한 자로서 시험의 주목대상이 되고 있는 듯하다. 조건이 전제되지 않은 신과 인간의 관계가 가능할 것인가? 사랑은 절대로 강압으로 얻을 수 없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고선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왜 그런지 욥기를 읽을 때 한국의 고전인 춘향전이 생각난다. 어설픈 비교이긴 하지만 여기에도 욥기의 초두와 같이 삼자가 개입되어 있다.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골자는 사랑의 ‘정절’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테스트를 받는 것인가 보다. 흔히 아가페 사랑은 완전한 충족에서 흘러 넘치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에로스 사랑은 무엇인가 결핍에서 그 요구를 찾는  사랑이라고 대비한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서 사랑과 슬픔, 분노와 기쁨을 끊임없이 찾는 인격의 하나님이심을 본다. 하나님은 인간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교감의 관점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에로스’라고 표현해 봄직하지 않을까… 

욥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도출해 볼 수 있을까? 욥은 희망에서, 낙망으로, 그리고 실망, 원망, 절망으로 치 닫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백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고백하고 있다. 암흑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대하는 순수한 신뢰였다. 그렇다면 믿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심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어드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암흑과 같은 시험이 없다면 과연 믿음이 유발될 수 있을까? 이제 욥의 하나님에 대한 관계성에 있어 그 수준은 달라져야 했다. 욥이 이해했던 수준의 하나님은 조건적 하나님이었다. 그의 ‘의’가 바로 그 조건이었다. 욥과 같이 우리도 ‘조건’이라는 것에 철저히 중독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를 넘어 사랑과 절대신뢰의 고백을 듣고 싶어하신다. 욥기의 마지막은 오랜 침묵 후에 등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이 난다. 답은 동문서답이었다. 거기엔 왜 하나님이 사단과 시비를 벌이며 욥에게 고난을 허용했냐는 정황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자연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욥에게 단지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네가 다 이해할 수 있겠냐는 반문이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물음은 ‘네가 나를 믿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욥기의 이야기는 수 천년 전에 있었던 일회적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도 우리가 당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이 물으신다: “너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무조건 믿어 줄 수 있겠니? 현재 납득이 안 된다 할지라도.” Yes라고 할 이러한 확신이 있는가? 우리가 여기에서 항거하지 않고 항복할 때, 바로 그러한 믿음으로 고백해 드릴 때, 커튼 뒤의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 될 것이다. 패배는 마귀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고백에서 우린 비로소 ‘정금같이’ 나올 것이다. 亨






Comments

  1. 신과 인간의 에로스... 낯설게 느껴지는 표현입니다. 정금같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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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찬양으로 마음에 와 닿던 이 가사가 욥기 23장 10절 말씀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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