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otion] St. Patrick

하나님을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어려서부터 나는 초록색이 좋았다. 자연의 색깔이라서 그런가? 미국에 와보니 녹색의 페스티벌이 있었다. 자연 녹색을 좋아하였으나 St. Patrick’s Day (March 17)는 내가 좋아하는 녹색만큼이나 친근하진 않았다. 교회사를 공부하며, 또 선교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패트릭(St. Patrick, c.385-461)이라고 하는 인물에 관해 알면서 이제는 녹색만큼이나 패트릭이 좋아진다. 패트릭에게선 녹색만큼이나 촌스러운 면도 있으나 녹색만큼이나 신선(fresh)한 맛도 풍기기 때문이다. 

패트릭은 원래 영국사람(English)이었다. 당시 영국의 이웃으로 마주보고 있던 아일랜드(Ireland)는 친근한 벗으로가 아니라 흉악한 원수로 있었다. 영국과 스콧틀랜드의 해안으로 침입하여 노략하고 약탈해 가는 것이 그들의 산업이었다. 패트릭은 납치된 소년가운데 하나였다. 6년간 노예로 초원의 등성에서 양을 치며 밤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낯선 땅, 노예로 잡힌 땅은 시간이 흘러도 정착될 수 없는 타향이었다. 밤마다 부르짖던 그의 소원에 응답이 온지라. 꿈에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드디어 그곳을 극적으로 탈출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한 그는 오랜 세월 자신의 죄성을 정화하며, 소명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 받쳐질 삶을 준비하였다. 그가 벗어난 땅에 대한 기억은 미련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시 그 땅으로 인해 번민하여야 했다. 그를 노예로 삼은 그 땅, 거기서 부르는 환영이 그 이유였다. “성 소년 (holy youth), 패트릭, 우리에게 다시 와서 우리를 도와주라!” 그것이 성경에서 바울을 부른 마게도냐인의 환영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면 조금이나마 거절할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패트릭의 영혼 깊숙이 거부할 수 없는 소명으로 인해 밤마다 괴로워 했다. 정작 그를 자유케 한 것은 바로 그 거부할 수 없는 소명에 응답하여 자신의 운명을 내어 맡긴 순간부터였다. 이전엔 해적에게 잡혀 노예가 됨으로 괴로워 하였다. 이제는 하나님께 붙잡힌 복음의 종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나님께 붙들린 그에겐 자유함이 있었다. 이제 패트릭은 해적들에 의해 납치된 자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도로,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맞바꿈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짖굳은 분만은 아니시다. 교회사의 전승을 보면 필경 그에겐 엄청난 능력과 함께 하신 것이 분명하다. 마치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 모세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처럼. 

패트릭은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아일랜드인의 삶의 양식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패트릭은 캘틱(Celtic) 전통을 따라 수도원을 짓는다. 복음과 삶이 같이 간 것이다. 여기서 그가 실현했던 복음의 멧세지는 캘틱의 영성과 함께 피어난다. 결국 그가 심은 복음은 후에 콜롬바(St. Colomba) 및 켈트 수도사들을 통해 바다를 건너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해안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전에는 해적의 바닷길이 이제는 사도들의 바닷길이 된 것이다. 서안의 미개한 한 섬에서 이제는 유럽의 심장부를 향해 복음은 확산되어 나아갔다. 한 사람의 순종에서 시작한 복음의 열매는 곧 중세 1000년의 기조가 된 셈이다. 패트릭의 때묻지 않은 신선한 믿음의 향기를 맡아보려 아일랜드를 찾아보았다. Downpatrick이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그의 무덤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서 보았다. 천 년이 넘은 믿음의 선배 앞에 가뿐 숨을 애써 가다듬어 보며 그의 삶에서 재현된 복음의 모습과 능력을 생각해 본다. 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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