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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10 Days of Prayer] Day 10. Holy Spirit as Distu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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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역사 속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상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적이고 보편적인 역사인 동시에 개인적이며 독특하기에 한마디로 논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 역사에 있어서도 성령론 만큼 다른 해석을 갖고 있는 영역은 없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한 것이다. 성령은 ‘보혜사’(Comforter)의 영이시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위로와 안위를 주시는 분이시기에 앞서 죄의 문제를 다루 실 분으로 오셨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은 ‘책망의 영’(Disturber)이시다. 영적 갱신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미국과 스코틀랜드에 있었던 1차대각성운동의 현장들을 돌아보며 또한 그 기록들을 읽어보면서 성령의 역사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각성운동은 죄를 질타하고 중생을 강조했던 영적 갱신운동이었지만 그 메시지는 언제나 두 가지 다른 반응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일부는 죄를 회개하고 영적으로 거듭남(regeneration)의 체험으로, 일부는 이에 대해 편견을 갖고 영적으로 역행(degeneration)하는 반응으로 맞섰다고 논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은 결국 교회를 분열시키고 만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광신적으로 비추어질 만큼 감정적, 신체적으로도 이상스러운(extraordinary) 현상들이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러기에 이 영적 각성의 시기는 또한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이해에 대단한 혼돈기이기도 했다. 그 자신의 교회에서 이미 영적 대각성을 목도한 에드워즈는 이러한 때 깊은 성찰로 대각성운동을 변호한 신학적 대변자요 목회자였다. 일단 그는 그가 말하는 소위 ‘Religious Affection’(신앙적 열정 혹은 감성)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는 신앙적 열...

[Devotion/10 Days of Prayer] Day 9. 그분만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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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1956년 전 미국을 놀라게 할 기사가 Life 매거진의 1월30일 이슈에 나갔다. 에쿠아도르 정글에서 살해당한 5명의 미국선교사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아우카(Auca)족이 사는 정글로 향했다. 이중 파일럿이었던 네이트(Nate Saint)는 부족 마을을 발견한 후 친근감을 유도하기 위해 몇 달간 공중에서 선회비행을 하면서 바구니에 이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넣어 떨어뜨리며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다. 애교와 위트가 넘치는 기발한 전략이었다. 나름 여러 차례 이들과 접촉을 시도한 선교사들은 드디어 원주민가운데 일부를 만나 친근한 우정의 표시로 비행기를 태워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전혀 언어가 다른 이들과 면대면 손짓과 몸짓으로만 소통할 수 밖에 없던 선교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이야기를 제스처로 묘사하였다. 로마군병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채찍으로 치며 창으로 찌르는 장면 등등... 그러나 얼마 후 이들은 모두 창에 찔린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당시 이들 부족가운데는 내분도 있었고 그로 인해 한 원주민 자매는 그들 공동체를 떠나 선교사들 가족과 지낸 일도 있었다. 어떠한 연고에서였는지 이들에 관해 전해들은 바에 대한 오해가 부족인들 가운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하던 중 이들에 관해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그들의 선교적 동기나 헌신에 대해선 A를 줄 수 있지만, 선교학교수로서 이들의 접근 방식에 관해 점수를 매긴다면 아마도 D이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것. 어찌 보면 오랫동안 부족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언어와 관습으로 충분한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하기도 전 너무 성급했던 행동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다큐로도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미망인들 가운데 한 분인 엘리자베스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5명의 선교사들은 왜 그들이 그러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죽었...

[Devotion/10 Days of Prayer] Day 8. No Waste for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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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거두시는 열매는 때로 우리의 기대와 많이 다름을 본다. 윌리엄(William Whiting Borden, 1887-1913)은 시카고의 부유한 백만장자 사업가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남북전쟁 당시 진공에서 우유의 수분을 제거해내는 농축우유 제법의 특허기술개발로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다. 지금도 이 사업은 지속되어 그로서리에 가면 Borden이란 트레이드마크의 유제품이 나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문의 유산을 이어 장차 훌륭한 비즈니스맨으로 키울 의도로 윌리엄의 부모는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대학진학을 하기 전 1년간을 해외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부유한 가문이 아니고선 가능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고 영국에 들른 때 때마침 그곳에 와 부흥회를 인도한 토레이(R. A. Torrey)목사의 설교를 듣고 선교사로서의 부름을 확신하게 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윌리엄은 곧 예일대로 진학한다. 그러나 그에게 대학생활은 단순한 학창생활이 아니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한 그는 학업과 운동은 물론, 복음활동에도 특심을 내었다. 1학년 때 시작한 성경공부모임이 졸업 시에는 1000명이 넘는 모임으로 발전하였고, 2학년 때는 Yale Hope Mission이란 선교단체를 조직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살피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예일에서 훗날 선교역사가가 될 라투렛(Kenneth Scott Latourette)과도 친분을 쌓았다. 라투렛은 훗날 그를 사도바울의 기상을 가진 학생이었다고 회고했다. 대학시절 참여한 한 선교대회에서 이슬람선교의 사도라 불린 선교사 즈웸머(Samuel Zwemer)로부터 도전을 받아 이슬람선교를 위한 뜻을 정하게 된다. 그는 당시 학생자원선교운동(SVM)에도 헌신하여 예일역사상 가장 많은 자원자를 동원하는 일에도 헌신하였다. 예일 졸업 후 그는 프린스턴신학교로 진학하여 신학훈련을 받는다. 그는 재학 당시 열...

[Devotion/10 Days of Prayer] Day 7. 테넌트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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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미국 펜실바니아주 네샤미니(Neshaminy) 교회의 묘지에는 테넌트(William Tennent, 1673-1746) 목사님의 무덤이 있다. 장로교 목사가 된 나는 테넌트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목사고시를 준비하는 과정 중 미국장로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접한 바가 있었다. 이후 나는 프린스턴신학교에 와서 공부하는 가운데 테넌트 목사님의 행적에 관해 좀더 자세히 파고들게 되었다. 영적 각성운동에 특히 관심이 많은 터라 그러했다. 테넌트 목사님은 스코틀랜드 태생의 목사로 아일랜드에서 장로교목사로 목회를 하다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당시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종교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필그림으로부터 몇 세대가 지나면서 청교도신앙의 이상과 열정은 대부분 식어버린 분위기였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목사님들은 이토록 영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대해 부담과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는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정도 밖에는 목회자를 양성 시킬만한 학교가 없었다. 그러나 이 두 대학 역시 초기의 이상과 멀어져 신학적으로 영적으로 갱신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상태였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테넌트 목사는 자신의 통나무로 만든 집에서 자신의 네 아들들과 주변의 뜻있는 청년들을 모아 부흥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보고 유럽을 비롯 기존의 대학에서 교육받은 목사들은 비아냥거리며 그가 시작한 학교를 일컬어 ‘통나무대학’(Log College)이라고 부르며 조롱하였다. 1727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당시 부흥운동에 불을 지피며 미국의 대각성운동에 크게 일조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과 더불어 약 20년간 존재하였던 이 부흥사 양성소도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곳서 양성된 장로교 목사들은 뜻을 모아 통나무대학의 DNA를 품은 수 많은 학교들을 세웠다. 그 중 하나로 본격적 부흥운동을 이어갈 목회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대학이 있었으니 오늘날 프린스턴대학...

[Devotion/10 Days of Prayer] Day 6. 닭이 먼저 알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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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이 질문은 아마도 창조론자와 진화론자들에겐 치열한 논쟁을 가져올 질문일 것이다. 당연 창조론자들은 닭이 먼저라고 주장할 것이고, 진화론자들은 달걀이 먼저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을 좀 다른 영역에 던져보려고 한다. 바로 선교와 관련되어서이다. 질문을 이렇게 해본다. 선교가 먼저인가, 성경이 먼저인가? 어느 것이 더 기원적이냐는 의미에서 묻는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교회와 전통의 권위에 기반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당연 개혁가들은 진정한 권위를 ’성경’에 두고 ‘sola scriptura’(Bible only)라는 기치아래 개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복음을 재발견함으로 믿음으로(sola fide)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의 도를 깨닫고, 성경번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였다.  그러한 전통의 유산에서 개신교회들은 ‘성경’의 권위아래 모든 것을 살펴보고 판단하게 되었다.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즐겨 쓰는 ‘성경적’이라는 수사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선교도 성경적으로 하는가 물으며 선교를 평가하기도 한다. 성경에 기반한 개신교의 중심사상을 조금도 의심하거나 나무랄 생각은 없다.  오늘날 일고 있는 선교적 각성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선교적’ 이해(mission Dei), 교회에 대한 ‘선교적’ 이해(missional church), 그리고 성경에 대한 ‘선교적’ 이해에서 소위 선교적 해석학(missional hermeneutic)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간 선교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사역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신학과 교회로부터 주변부로 전락되는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천 년이 넘게 크리스텐덤(Christendom)적 구조에서 선교와 교회가 분리된 일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자각이 서구기독교에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가운데 있는 목소리로 ...

[Event] Apollos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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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th Apollos Project] 2025.05.20~24.

[Devotion/10 Days of Prayer] Day 5. Harp of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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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고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에프렘(Ephrem, 306-373)은 시리아의 교부, 신학자, 찬송작가로 “Harp of the Holy Spirit”이라는 별명과 “Doctor of the Church”라는 칭호를 얻은 자이다. “성령의 수금”이라고 하였으니 그가 예배를 위해 얼마나 많고 아름다운 찬송을 작시하였는지를 상상케한다. 그는 또한 신학자였지만 신학적 서술이 운율적이다. 마치 시편과 같다고 할까?  시리아적인 문화방식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묘사하는 방법에서 그리스적인 방식과 달랐다. 헬라적 방식은 산문적이기 때문이었다. 헬라적 방식이 사변적이고 추상명사를 많이 썼다면 시리아적 방식은 구체적이고 보통명사를 많이 썼다고 보면 된다. 헬라적 방식이 우화적(allegorical)인 반면, 시리아적 방식은 상징적(typological) 이었다. 이미 자연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거룩한 상징물들로서 곧 성례(sacrament)와 같은 reminder로서의 기능을 가진다는 것이다. 마치,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가리키는 것처럼. 에프렘의 이러한 신학적 방식은 결코 일상이 무의미하거나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신비를 볼 수 있는 시각과 인식인 것이다. 삶이 풍성해 진다. 예를 들어 시리아 지역에서 널리 불린 찬송가로 알려진 솔로몬의 송시집(The Odes of Solomon)엔 이러한 구절이 있다:  한 잔의 젖이 나에게 제공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주님의 인자의 달콤함으로 마셨다 독생자가 첫 잔이며 성부는 젖을 내는 그분이며 성령은 그 분에게 젖을 먹이는 그녀이다.  ─솔로몬의 송시집 19편 중에서 삼위일체적인 운율의 이 시가 얼마나 또한 목가적인가? 이는 당시 목축문화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젖(우유)이 자연스러운 소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에프렘의 찬송시에는 또한 인류의 첫 어머니인 이브의 불순종과 구...